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조현병의 조기 징후[양용준 정신과 의사의 인터뷰]
조현병은 일부 사람만의 병이 아닙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환경 변화로 인해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뇌 질환입니다.
특히 초기에 나타나는 언어 변화, 혼잣말, 피해 망상, 감정 둔화, 수면 장애 등은 본인보다 주변 사람이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신호입니다.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진료를 받는다면 충분히 회복이 가능합니다.
1. 조현병, 낯설지만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병
조현병은 과거 ‘정신분열증’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조현병(調絃病)’이라 부릅니다.
악기의 줄이 조율되지 않으면 음이 어긋나듯, 생각과 감정, 행동의 조화가 흐트러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병은 유전이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신경전달물질(도파민)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생물학적 질환입니다.
유병률은 약 1%로, 100명 중 한 명꼴로 나타나며, 특히 청소년기에서 30세 전후의 청년기에 발병이 많습니다.
양용준 정신과 의사는 “조현병은 특정한 사람만 겪는 병이 아니라, 누구나 극심한 스트레스와 환경 변화 속에서 발병할 수 있는 병”이라며
“초기 변화에 가족이 빨리 대응하는 것이 치료의 관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2. 조현병, 주위에서 알아채는 변화 다섯 가지
조현병은 본인보다 가족과 주변 사람의 눈에 먼저 띄는 변화로 시작됩니다.
이 단계를 ‘전구기(前驅期, prodromal phase)’라 하며, 조기에 발견하면 예후가 매우 좋습니다.
아래 표는 초기 변화의 대표적인 다섯 가지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구분 | 조기 변화 특징 | 설명 및 주의점 |
① 말의 흐름이 달라집니다 | 주제를 자주 바꾸거나 문장이 길고 산만해집니다 | 평소 조리 있게 말하던 사람이 핵심이 흐려지고, 의미 없는 단어를 반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사고를 조직하는 뇌 기능이 약해진 초기 신호일 수 있습니다. |
② 혼잣말이 늘어납니다 | 혼자 중얼거리거나 대화하듯 감정이 실린 말투가 나타납니다 | 단순한 버릇이 아니라 내면의 생각이 외부로 흘러나오는 현상일 수 있습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이런 혼잣말이 환청(幻聽)과 연결된 내적 언어 표현으로 보고됩니다. 즉, 머릿속 소리를 외부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③ 의심이 많아집니다 | 주변 사람을 불신하거나 피해 망상을 보입니다 | “이웃이 나를 감시한다”, “TV 속 인물이 나를 욕한다”는 식의 비현실적 사고가 반복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설득보다 불안 완화와 신뢰 회복이 중요합니다. |
④ 감정이 무뎌지고 대인관계를 피합니다 | 표정이 무표정해지고, 즐거움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 우울증과 비슷하지만, 감정 표현 저하 + 사회적 위축이 함께 나타나는 점이 다릅니다. 몇 주 이상 지속된다면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필요합니다. |
⑤ 수면·생활 리듬이 무너집니다 | 불면·과수면·밤낮이 뒤바뀜 | 수면 패턴이 급격히 바뀌거나 식습관이 흐트러지는 것은 뇌의 스트레스 조절 기능이 약화된 신호입니다. 방치하면 증상이 악화되므로, 생활 리듬 회복이 매우 중요합니다. |
3. 가족이 먼저 알아차리고 도와야 합니다
조현병은 병식(病識, 자신이 아프다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본인이 병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가족이 “이상하다”는 작은 징후를 보고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양용준 의사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가족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이 이미 조기 경고 신호일 수 있습니다.
증상이 반복될 때는 설득보다 심리적 안전감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족이 해야 할 일
- 논쟁하지 말고 공감하기: “그렇게 느끼는구나” “많이 힘들겠구나” 등 감정적 공감을 표현합니다.
- 전문가 진료 유도하기: “요즘 잠이 잘 안 오니까 한번 검사만 받아보자”처럼 자연스럽게 안내합니다.
- 불안 자극 줄이기: 큰 소리, TV 뉴스, 갈등 대화 등 외부 자극을 최소화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환자의 방어심을 줄이고, 치료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4. 조기 치료가 예후를 바꿉니다
조현병은 조기에 발견하면 충분히 회복 가능한 병입니다.
치료받지 않은 기간(DUP, Duration of Untreated Psychosis)이 길어질수록 뇌 기능이 손상되지만,
6개월 이내에 치료를 시작하면 사회 복귀율이 70% 이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최근 국내 병원에서는 청년층을 대상으로 조기 개입 프로그램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서울청년클리닉’은 12세~30세 청년을 대상으로 전구기 단계에서 조기 진단과 치료를 병행하며,
약물치료 외에도 인지훈련·사회재활 프로그램을 함께 시행합니다.
양용준 의사는 “조현병은 불치병이 아니라 조기에 발견해 관리하면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조현병은 뇌의 조율이 잠시 어긋난 상태일 뿐입니다.
조기 발견과 치료로 다시 조화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조현병은 멀리 있는 병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뇌 질환입니다.
평소와 달리 의심이 많아지고, 말이 논리적이지 않으며, 혼잣말이 늘어나는 모습이 보인다면
가족과 주변인은 반드시 전문의의 진료를 권해야 합니다.
조기 발견은 생명을 지키는 치료의 시작입니다.
작은 변화 하나를 알아차리는 관심이 누군가의 인생을 되돌릴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서울대학교병원 서울청년클리닉, 국립정신건강센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BMC Psychiatry(2025), 조현병 전구기 증상 관련 임상연구,
양용준 정신건강의학과 인터뷰